6화. 넉 달

📅 2026.09.15 👁 37회 🏷️ #뇌지예 #중뢰진 #주역소설 #웹소설 #소설 #고민상담 #심리상담 #p60퍼스널코드 #퍼스널코드
뇌지예(雷地豫) 초육 → 중뢰진(重雷震)

6화. 넉 달

뇌지예(雷地豫) 초육 → 중뢰진(重雷震)

계단에서부터 목소리가 들렸다.
"아니야,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. 어, 어. 끊어."
통화를 끊으면서 들어왔다.

"여기 3층인 줄 알고 한 층 더 올라갔어요."
"가끔 그러세요."
마흔둘, 여자였다. 앉으면서 휴대폰을 화면이 아래로 가게 엎어 놨다.
잔을 앞에 놓고 보온병을 기울였다.
"커피는 없어요."
"어, 잘됐네요. 저 커피 끊었어요. 잠이 안 와서."
"제가 말이 좀 많아요. 죄송해요."
"천천히 하세요. 왜 오셨는지부터요."
"신고를 할까요, 병가를 낼까요."
"그건 제가 답할 수 있는 게 아닌데요."
"노무사한테 물으셔야죠."
"만났어요. 두 번이요. 아니 세 번인가."

그러고는 처음부터 꺼냈다.
"3년 전에 부서를 옮겼거든요. 처음엔 좋았어요, 진짜. 근데 반년 뒤에 부장이 바뀌었어요. 전 부장님은······ 아, 이 얘기가 아니지."
"작년 9월부터예요. 주간회의 때마다 제 보고만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해요."
"몇 번이요."
"한 회의에서 네 번까지요. 나중엔 파일을 세 개씩 만들어 갔어요."
"······."
"밤에 메신저도 와요. 작년 12월에 서른아홉 개."
"세어 보셨어요?"
"새벽에 누워서 하나씩 세고 있는 거예요. 좀 웃기죠."
웃지는 않았다.
"2월 평가에서 저만 C 받았어요. 팀에 다섯인데 저 혼자."
"······."
"3월부턴 잠 오는 약 먹어요. 근데 그건 요즘 다들 먹잖아요. 옆 팀 과장님도 먹고."
"······."
"고충처리위원회도 있긴 있어요. 근데 위원장이 그 사람이랑 입사 동기예요. 작년 송년회 때 둘이 듀엣으로 노래했어요. 무슨 노래였냐면······."
말하다가 스스로 멈췄다.
"아, 됐다.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."
문이 열렸다. 아래층 세탁소 사장이었다. 종이봉투를 하나 들고 있었다.
"택배 두고 갔던데. 어, 손님 계셨네. 커피 드려요?"
"아니에요 아니에요." 그가 손을 저었다.
문이 닫혔다.
"······여기 재밌네요."
"어디까지 했죠."
"노무사요. 아 맞다, 증거는 되는 편이래요. 캡처랑 회의록이랑. 근데 길면 반년도 간대요."
"그럼 뭐가 남았어요."
"네?"
"증거도 되고 방법도 아시잖아요. 그럼 뭘 정하려고 오신 거예요."
물잔을 만지작거렸다. 아직 한 모금도 안 마셨다.

"······."
"그 사람 내년 6월에 나가요. 정년이요."
"그게 왜요."
"절차가 그때까지 안 끝나면요."
"안 끝나면요."
"그냥 정년퇴직이 되잖아요. 꽃다발 받고, 사진 찍고, 다들 웃으면서."
말이 느려졌다.
"병가는 왜 망설이세요."
"쉬면 제가 진 것 같아서요."
"······."
"이게 좀 이상하죠. 제가 아픈 건데 왜 제가 지는 거죠."
"그럼 오늘 물으러 오신 건 뭐예요."
한참 걸렸다. 들어와서 처음으로 말이 안 나왔다.
"······제가 겪은 거요. 남긴 남아요?"
"어디에요."
"어디든요. 어디 하나라도요."

산가지를 꺼냈다. 쉰 개를 여섯 번 나눠야 괘 하나가 나온다.
"이거 오래 걸려요?"
"십오 분쯤이요."
"천천히 하세요."
아까 내가 한 말을 돌려줬다.
그동안 휴대폰이 두 번 울렸다. 엎어 놓은 채로 뒀다.
뇌지예(雷地豫)가 나왔다. 첫 번째 자리가 움직였다.
"예괘예요. 위가 우레고 아래가 땅입니다."
"우레요? 천둥이요?"
"네. 그냥 천둥이라고 보시면 돼요."
"아 그럼 좋은 거 아니에요? 뭔가 터지는······."
"글쎄요. 예(豫)가 즐겁다는 뜻도 되고 미리라는 뜻도 되는 글자예요."
"두 개가 왜 같은 글자예요. 이상하네."
"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. 근데 이 괘에서는 둘이 붙어 다녀요. 미리 즐거워한다, 이렇게요."
"네. 아직 안 왔는데 벌써 좋아하는 거요."
괘 맨 앞에는 이건후행사(利建侯行師)라는 말이 붙어 있다. 사람을 세우고 무리를 움직이는 것이 좋다.
"무슨 말이에요 그게."
"혼자 하는 일로는 안 적혀 있다는 겁니다."
"······저 혼자인데요."
"······."
"같이 당한 사람 둘 더 있어요. 근데 아무도 안 나서요."
"물어보셨어요?"
"못 물어보죠."
"왜요."
"물어보면 그 사람들이 거절해야 되잖아요. 거절하고 나면 저를 못 보고요."
"······."
"물어보는 순간 제가 그 사람들 잃는 거예요. 아직 안 잃었는데."
움직인 자리에는 세 글자가 적혀 있다. 명예(鳴豫), 흉(凶).
"명예요? 좋은 그 명예요?"
"아뇨, 그 명예 아니고요. 운다, 소리 낸다는 글자예요."
"아."
"소리 내어 즐거워한다, 흉하다. 이렇게 돼 있어요."
"······소리 내지 말라는 거예요?"
"아뇨."
"아니 지금 그렇게 적혀 있잖아요."
"소리를 내지 말라는 게 아니라요. 아직 안 일어난 걸 미리 즐거워하는 자리다, 그 얘깁니다."
"제가 뭘 즐거워해요."
목소리가 올라갔다.
"······그럼 아닐 수도 있고요."
"신고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려 보신 적 있죠."
"······있어요."
"어떤 장면이요."
한참 있다 말했다. 아까랑 속도가 아주 달랐다.
"그 사람이 앉아 있고요. 누가 물어봐요. 그때 왜 그러셨냐고."
"······."
"제가 그 자리에 없어도 돼요. 그 장면만 있으면 돼요. 매일 생각해요, 자기 전에."
"그 장면이 왜 흉한지는 안 적혀 있어요."
"그럼 왜 그런 표정이세요."
"······그 장면이 안 나왔을 때 뭐가 남나 싶어서요."
"천둥은 소리가 큽니다. 그리고 금방 지나가요."
"······."
"이 괘엔 천둥 다음 얘기가 없어요. 거기서 끊깁니다."
"······그게 제일 무서워요."
"네."
"끝나고 나서요. 다 끝나고 나서 제가 어떻게 되는지가요."
"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. 대신 이 괘가 허용하는 모양이 몇 개 있어요. 어느 게 제일 닮았는지만 보세요."
사장이 두고 간 종이봉투를 뜯어서 폈다. 안쪽이 하얬다. 적으면서 하나씩 읽어 줬다.

하나. 신고한다. 넉 달쯤 걸린다. 결과는 서면 경고 한 장이고, 그 사람은 예정대로 6월에 나간다. 그동안 같은 층에 있다.  — 끝나긴 끝나는데, 끝난 티가 안 난다.
둘. 병가를 낸다. 석 달 쉬고 돌아온다. 자리가 바뀌어 있고 그 사람은 그대로다. 아무도 왜 쉬었는지 묻지 않는다.  — 내 몸은 쉬는데 그 사람은 안 쉰다.
셋. 둘 다 한다. 조사는 서류로만 간다. 없는 동안 얘기가 돌고, 돌아왔을 땐 이미 끝나 있다.  — 내 일인데 내가 없는 데서 굴러간다.
넷. 아무것도 안 한다. 내년 6월에 그 사람이 꽃다발을 받는다. 나도 그 자리에 서서 같이 사진을 찍는다.  —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.

그가 종이를 오래 봤다. 그렇게 말이 많던 사람이 그동안 한 마디도 안 했다.
"이거 네 개 다 그 사람 6월에 나가네요."
"네."
"······."
"하나요."
"왜요."
"나머지는 언제 끝나는지가 안 적혀 있잖아요. 이거만 넉 달이라고 써 있어요."
"그 넉 달, 선생님이 말씀하신 숫자예요."
"제가요?"
"반년도 간다고 하셨죠. 그걸 줄여 적은 겁니다."
"······아, 그러네."
짧게 웃었는데 소리가 안 났다.
"그럼 제가 정할 수 있는 게 뭐예요. 그 사람 나가는 건 정해져 있는데."
"······."
"넉 달짜리로 할지 말지. 그거밖에 없네요."
그렇게는 생각 안 해 봤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.
휴대폰이 또 울렸다. 이번에는 뒤집어서 봤다가 다시 엎어 놨다.
"회사예요?"
"딸이요. 학원 끝났대요."
봉투 조각을 반으로 접어 휴대폰 케이스 뒤에 끼웠다.
일어서면서 말했다.
"저 진짜 말 많죠."
"괜찮습니다."
문 앞에서 한 번 멈췄다.
"선생님은요. 그 사람 벌 받았으면 좋겠어요?"
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갔다.
계단에서 세탁소 사장이랑 인사하는 소리가 났다. 안녕히 계세요, 가 두 번 들렸다.

오늘 나온 건 예괘였다. 칸이 여섯인데 네 번째 하나만 굵고 나머지 다섯은 가는 그림이다. 위가 우레, 아래가 땅이다.
움직인 건 맨 아래 칸이었다. 여섯 중에 제일 밑이다.
그 한 칸이 가는 데서 굵은 데로 바뀌면 아래쪽 땅이 우레로 바뀐다. 위도 우레고 아래도 우레인 그림이 된다. 진(震), 천둥이 둘 겹친 괘다.
앞이 오늘이고 뒤가 나중이라는 뜻은 아니다. 같은 일을 다른 자리에서 본 두 장이다. 예괘는 소리가 위에서만 나는 그림이고, 진괘는 아래에서도 같이 울리는 그림이다.
진괘 첫머리에 불상비창(不喪匕鬯)이라는 말이 있다. 천둥에 놀라고도 손에 든 국자랑 술은 안 놓쳤다는 뜻이다.
안 놓쳤다고만 적혀 있지 어떻게 쥐고 있었는지는 안 적혀 있다.
아까 그 질문에는 답을 못 했다.

이 글은 점술 상담이 아니라, 괘를 렌즈 삼아 상황을 다시 보는 연습입니다. 등장인물과 사연은 모두 가상입니다.

#뇌지예#중뢰진#주역소설#웹소설#소설#고민상담#심리상담#p60퍼스널코드#퍼스널코드
⛎ 내 퍼스널코드 분석하기

사주·대운·십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합니다