16화. 작게 내면 안 틀려요

📅 2026.09.27 👁 24회 🏷️ #p60퍼스널코드 #퍼스널코드 #주역 #상담소설 #연재소설 #관점전환 #동양고전 #지산겸 #겸괘 #명겸 #난청 #합창단 #위로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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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화를 끊고 나니 그가 문 안쪽에 서 있었다.
"노크했는데요."
"못 들었습니다."
"아, 네."
의자에 앉으면서 몸을 오른쪽으로 조금 틀었다. 탁자하고 비스듬해졌는데 고쳐 앉지 않았다.
보온병은 아침에 채워 뒀다. 그는 컵을 받아서 두 손으로 감싸기만 했다.
"9 년 동안 합창단 활동을 하고 있어요. 구 년 됐어요. 시민합창단인데 문화회관 3 층에서 해요. 화요일 저녁 일곱 시 반부터 두 시간이요. 9 년 동안 네 번 빠졌어요."
"네 번이요."
"처남 상 때 두 번이고, 두 번은 태풍이요. 그건 회관이 문을 닫아서 빠진 거라 제 사정은 아니고요."
예순둘이라고 했다. 버스 회사에서 정비를 32 년 하고 3 년 전에 나왔다.
"12월 6일에 정기공연이 있는데요. 그거 끝나고 그만둘까 하고요."
"왜요."
"자리가 없어져서요."
"어느 자리요."
"3 열 오른쪽 끝이요. 베이스는 뒤에 서니까 3 열이고, 저는 끝이 편해서요."
"편한 게 어떤 겁니까."
그가 컵을 내려놨다.
"왼쪽 귀가 잘 안 들려요. 3 년 됐고 검사는 받았어요. 오른쪽은 괜찮대요."
"오른쪽만 쓰시는 거네요."
"네. 집에서 텔레비전을 오른쪽으로 돌려 앉으면 14면 되는데, 그냥 앉으면 19까지 올려야 돼요. 그래서 소파를 돌려놨어요."
그 얘기를 할 때 처음으로 말이 빨라졌다.
"식당은 안쪽 오른쪽으로 앉고, 버스는 오른쪽 창가로 타고, 전화는 오른손으로 받고요. 그런 건 미리 해 놓으면 되는 거라서요."
"합창단에서는요."
"이 년 전에 줄을 옮겼어요. 왼쪽 끝에 있다가 오른쪽 끝으로요. 옆에 박 선생이 서요. 일흔셋인데 작년부터 가사를 못 외워서 악보를 계속 들고 있거든요. 그래서 입이 잘 보여요."
그가 가방에서 악보를 꺼내 폈다. 연필 자국이 많았다.
"이번 곡에 스물세 군데 적었어요."
음표 위에 적은 게 아니었다. 박 선생 입 벌어지면 반 박자 뒤, 라고 적혀 있었다. 이 선생 왼손 내려오면 끊음, 이라고도 적혀 있었다.
"음은 아는데 들어가는 데를 놓쳐서요."
"9 년째 이렇게 하신 겁니까."
"2 년이요. 그 전에는 그냥 들렸어요."
"그럼 이번에 뭐가 없어집니까."
"지난주에 이 선생이 이번엔 파트별로 안 서고 섞어 선다고 했어요. 소프라노 옆에 베이스 세우고, 화음을 서로 들으라고요. 이 선생은 중학교 음악 선생인데 9 년째 봉사로 해 주는 거라 저희가 뭐라고 할 처지도 아니고요."
"그렇게 되면요."
"박 선생이 옆에 안 서죠. 끝자리도 없어지고요."
"대형표는 나왔습니까."
"네. 박 선생이 한 장 더 있다고 줬어요."
"보셨어요."
"아직이요."
"일주일 됐는데요."
그가 컵을 조금 돌려놨다.
"펴 보면 확인이 되잖아요."
그가 가방을 한 번 내려다봤다.
산가지를 세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. 손을 무릎에 올려 놓고 기다렸고, 그 동안 방에서 나는 소리는 그것뿐이었다.
다 세고 나니까 그가 말했다.
"소리가 좋네요. 나무라서 그런가."
땅 밑에 산이 들어가 있는 그림이 나왔다.
"겸(謙)입니다. 낮춘다는 뜻이에요."
"더 낮추라는 거예요?"
"이 괘는 더 낮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. 산이 땅 위에 솟아 있지 않고 땅 밑에 들어가 있는 걸 그려 놓은 거예요. 이미 아래에 있는 걸 그린 겁니다."
"······."
"괘 위에는 군자유종(君子有終)이 붙어 있습니다. 끝이 있다는 말이에요. 잘 끝난다고는 안 적혀 있습니다."
"움직인 자리는 아래에서 두 번째였고, 거기 붙은 말이 명겸 정길(鳴謙 貞吉)입니다."
"명이 뭐예요."
"새가 우는 글자입니다. 소리를 낸다는 뜻이에요. 울리는 겸손이니 곧으면 길하다, 그렇게 됩니다."
"······낮추는 건데 소리를 내요?"
"겸이라는 글자에 말씀 언(言) 자가 붙어 있습니다. 낮춘다는 뜻인데 입 쪽에 붙어 있는 글자예요."
"맨 위 칸에도 같은 두 글자가 있습니다. 명겸(鳴謙). 거기는 이용행사(利用行師)라고 돼 있어요. 군사를 움직이는 데 쓴다는 말입니다."
"같은 말인데요."
"네. 같은 두 글자인데 아래에서 두 번째에 있으면 곧아서 길하다고 돼 있고, 맨 위에 있으면 군사를 낸다고 돼 있습니다. 어디서 울리느냐만 다릅니다."
"저는 어디예요."
"아래에서 두 번째요."
그가 악보를 반으로 접었다가 도로 폈다.
"저는 작게 내요."
"······."
"작게 내면 안 틀려요."
"언제부터요."
"작년 봄에 이 선생이 베이스 한 명 빈다고 했어요. 그날 제가 소리를 냈는지 안 냈는지를 제가 몰라요. 그때부터요."
"틀리는 게 무섭습니까."
"아니요."
"그럼요."
"······제가 빠져도 소리가 똑같으면요. 그럼 9 년 동안 난 무엇을…."
"지금 펴 보시겠습니까."
"······뭐라고요?"
한 시간 동안 그는 다 알아들은 것처럼 네, 네 했다. 되물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.
"대형표요. 지금 펴 보셔도 됩니다."
그가 가방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. 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.
"······일 열이네요."
"어디가요."
"제 이름이요. 일 열 오른쪽 끝이요."
"섞어 선다고 하셨는데요."
"섞었어요. 알토랑 소프라노가 사이사이에 있어요. 근데 끝은 저예요."
"옆에는 누가 있습니까."
"······정 여사요. 알토인데 목소리가 큰 사람이에요."
그가 종이를 탁자에 놓고 한참 봤다.
"한 장 주시겠습니까. 악보 뒤에 오선만 있는 장이요."
그가 맨 뒷장을 찢어 줬다. 오선 위에 네 줄을 적었다.

하나. 십이월까지 지금처럼 한다. 왼쪽 얘기도 소리 크기도 그대로 둔다. — 아무것도 안 바뀐다. 십이월 육일이 지나간다.
둘. 박 선생한테만 말한다. 왼쪽이 안 들린다고. — 한 사람이 알게 된다. 자리는 그대로다.
셋. 이 선생한테 자리를 청한다. 이유는 말하지 않고. — 지금까지 혼자 해 오던 걸 부탁으로 바꾼다.
넷. 소리를 원래 크기로 낸다. 틀리면 틀린 채로 둔다. — 맞는지 틀리는지를 남이 알게 된다.

"그만두는 건 안 적었습니다. 십이월 육일까지는 어차피 하신다고 하셨어요. 그 뒤는 오늘 정할 게 아니고요."
"넷 다 같은 자리에서 나온 겁니다. 소리를 안 내는 자리에서 나온 건 하나도 없고요."
그가 네 줄을 두 번 읽었다.
"넷이요."
"왜요."
"틀리면 이 선생이 뭐라고 할 거 아니에요."
"그게 좋으세요?"
"······그럼 제가 낸 게 되잖아요."
그가 오선 종이를 접어서 악보 사이에 끼웠다.
"이거 12월 6일까지만 갖고 있을게요."
일어나면서 그가 몸을 왼쪽으로 돌려 인사했다. 앉아 있는 동안에는 한 번도 그쪽을 나한테 준 적이 없었다.
노트를 폈다. 오늘 적은 건 한 줄이었다.
네, 라고만 적혀 있었다.
오늘 나온 건 겸이었다. 칸 여섯 개 중에 아래에서 세 번째만 굵고 나머지 다섯은 가늘다. 위 세 칸이 땅이고 아래 세 칸이 산이라, 산이 땅 위에 솟은 게 아니라 땅 밑에 들어가 있는 그림이다.
움직인 건 아래에서 두 번째, 가는 칸이었다.
그 칸이 굵어지면 아래쪽이 산에서 바람으로 바뀐다. 위는 그대로 땅이다. 땅 밑에 바람이 들어 있는 그림을 승(升)이라고 한다. 나무가 흙을 밀고 올라간다는 뜻이다.
겸이 먼저고 승이 나중인 게 아니다. 밑에 깔린 것이 산이냐 나무냐, 그것만 다르다.
산이 나온 게 오래전에 한 번 있었다. 그때 등(背)이라는 글자를 붙들고 있다가 그냥 보냈다. 등은 자기가 못 보는 쪽이다.
오늘은 그 산이 밑에 깔려 있었고, 아무도 등 얘기를 하지 않았다.

이 글은 점술 상담이 아니라, 괘를 렌즈 삼아 상황을 다시 보는 연습입니다. 등장인물과 사연은 모두 가상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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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주·대운·십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합니다